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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규섭 시인님] 코로나 공포 속 맑아진 공기

      꽃들이 릴레이 경주하듯 배턴을 주고받으며 계절을 수놓는다. 짙은 꽃향기로 벌들을 유혹하던 아카시아꽃이 지자, 꽃잎 넉 장이 십자가를 닮은 산딸나무 꽃이 성스럽게 뒤를 잇는다. 가로수로 변신한 이팝나무엔 쌀밥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보릿고개 시절 그리던 고봉밥 같다. 이팝나무 이름도 흰쌀밥을 의미하는 ‘이밥’에서 왔다. 올봄 우리 동네 간선도로의 늙은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이팝나무로 바뀌었다. 코로나에 지친 심신을 힐링 하려 꽃과 숲 그늘을 찾는 시민들이 부쩍 늘었다. 어린이들을 위한 작은 동산에도 아이들의 웃음꽃이 팝콘처럼  [ 이규섭 시인님 - 20.06.04 11:13:27]

  • [권영상 작가님] 뜰안의 대추나무

      뜰 안 대추나무에 대춧잎 핀다. 유난히 반짝인다. 대춧잎은 마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마주 보는 마음을 반짝이게 한다. 세상에서 대추나무 대춧잎처럼 반짝이는 게 있을까. 수면에 부서지는 햇빛처럼 눈부시다. 해가 뜨나 안 뜨나 별나게 반짝인다. 대추나무를 뜰 안에 심은 건 지지난해 초겨울이다. 가급적 집안에 한 식구처럼 친숙한 나무를 심고 싶었다. 감나무같이 왜 좀 편안한, 마음씨 좋은 작은아버지 같은, 가까운 5촌이거나 7촌 당숙 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촌수를 가진 사이처럼 친숙한. 그런 나무 중에 살구나무가   [권영상 작가님 - 20.06.03 10:16:04]

  • [한희철 목사님] 가지 못하는 길

      어느 책이었는지는 떠오르질 않지만 오래전에 읽은 글 중 ‘가지 못하는 길’에 관한 것이 있습니다. 어느 깊은 산속에 자리 잡은 외딴 마을이 있었습니다. 마을 앞에는 세 갈래 길이 있었는데, 길마다 이름이 붙어 있었습니다. ‘바다로 가는 길’ ‘도시로 가는 길’ ‘아무 데로도 가지 못하는 길’이 그것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앞의 두 길로만 다녔습니다. 바다로 가는 길을 통해 바다를 오갔고, 도시로 가는 길을 통해 도시를 오갔습니다. 어느 누구도 세 번째 길로는 들어서려고 하질 않았습니다.   [ 한희철 목사님 - 20.06.02 10:14:09]

  • [정운 스님]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인간의 삶, 자체가 다툼이 많은 세상이다. 일전에 어느 지인과 대화를 하는 와중에 의견 충돌이 있었다. 그 의견 충돌 주제는 여성 인권 문제였다. 상대방[男] 입장에서는 자신의 의견이 정당하다고 주장하고, 나 또한 내 의견이 옳다고 주장했다. 당연히 서로 기분 좋을 리는 없다. 내 기분이 언짢으니, 상대방을 좋게 평가할 리가 없다. 그 상대방 또한 기분 언짢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내가 왜 기분이 나쁜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우리나라 차茶를 정립한 초의 스님(1786~1866  [ 정운 스님 - 20.06.01 10:34:44]

  • [강판권 교수님]  여름은 하夏하夏

      한국의 여름은 푸르고 푸르다. 대부분의 갈잎나무들이 잎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나뭇잎은 광합성을 통해 나무의 성장을 이끌 뿐 아니라 열매를 보호하는 역할도 담당한다. 잎보다 먼저 꽃을 피운 매실나무, 살구나무, 왕벚나무, 배나무, 자두나무, 복사나무, 산수유 등의 열매들은 지금 잎의 보호를 받고 있다. 어린 열매들은 강렬한 빛을 받으면 화상 입을 가능성이 높다. 잎의 보호를 받고 있는 열매들은 성숙하기 전까지 사람들과 동물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래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어린 열매를 볼 수 없다. 나무들이 푸른 잎으  [ 강판권 교수님 - 20.05.29 10:29:08]

  • [이규섭 시인님] 삶에 향기가 나려면

      빨간 넝쿨장미가 그림처럼 피어 향기를 뿜는다. 이웃집과 경계인 시멘트 담장 위, 아침나절 반짝 햇볕이 드는 열악한 환경인데도 끈질긴 생명력으로 붉은 함성을 내지른다. 아기 울음소리를 내며 담장을 넘나들던 도둑고양이를 막아주니 금상첨화다. 줄장미는 오월 하순에서 유월 초까지 절정을 이루며 꽃등을 밝힌다.  붉은 장미는 원색적이고 강렬하다. 요염한 향기에 멀미가 난다. 이화은 시 ‘줄장미’에 잘 녹아 있다. ‘입술이 새빨간 여자는 다 첩인 줄 알았다/ 손톱이 긴 여자는 다 첩인 줄 알았다/ 뾰족구두를 신은 여자는   [ 이규섭 시인님 - 20.05.28 10:36:54]

  • [권영상 작가님] 건강한 시골개들

      봄이 무르익어 가고 있다. 사람만 봄인가. 세상 모든 만물들에게 다 봄이다.  오늘 점심 무렵이다. 동네 개들이 마을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시골은 집집마다 개를 키우는 편이라 합세하여 짖어대는 울음 기세가 폭풍 같았다. 건너편 야산 기슭에 출현한 흰 개가 문제였다. 동네 개들을 뒤집어지게 만든 그놈은 수캐다. 그리고 그들의 울음 잔치 배경엔 무르익어가는 봄이 있었다.  흰 개는 마을에서 짖어대는 개들의 속내를 너무도 잘 아는 노련한 놈이다. 저번에도 그랬듯이 그는 자신의 존재를 잘 드러낼 수 있는 건너  [ 권영상 작가님 - 20.05.27 10:16:20]

  • [한희철 목사님] 꿩을 묻으며

      오래전 강원도에서 살 때였습니다. 하루는 꿩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실은 잡은 게 아니고 어쩌다가 주운 것이었습니다. 저녁 무렵 바람이나 쐴 겸 강가 쪽으로 나갔을 때였습니다. 저만치 도로 위에 직행버스가 서 있고 사람들이 버스에서 내려 웅성거리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무슨 사고가 난 게 아닌가 싶어 놀라서 달려갔지요. 가서 보니 사고는 사고였는데 사람이 다친 게 아니었습니다. 뜻밖에도 꿩이었습니다. 날아가던 꿩 한 마리가 달리는 버스 유리창에 부딪친 것이었습니다. 버스와 부딪친 후 바닥으로 떨어진 꿩을 운전기사와 승  [ 한희철 목사님 - 20.05.26 11:01:24]

  • [정운 스님] 스투키와 난蘭에 물주기

      근자 스승의 날, 오래전 가르쳤던 학생들과 스님들 몇 분이 문자를 주거나 선물을 보내왔다. 주위 몇 분에게서 인사를 받으며 심기가 매우 불편했다. 내가 스승으로서 대접받을 만큼 덕성을 갖추지 못했는데, 스승의 날이라고 인사받는 것이 멋쩍었다고 할까? 작년까지도 그렇지 않았는데, 올해는 부쩍 그런 생각이 든다. 인생의 철이 드는 건가! 스승으로서의 자질과 덕성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본다. 자로가 공자에게 물었다.  “(어떤 것을) 들으면, 그것을 그대로 행해야 합니까?”   공자가 말했다.   [ 정운 스님 - 20.05.25 10:33:28]

  • [김민정 박사님] 다비치 안경원에서

      창 너머 사람들은 발 빠르게 달아나고  실직한 그 남자만 가로수처럼 멈춰 있다  굴절된 신호등 불빛이 길을 자꾸 꺾는다 거기, 그냥 그대로 바람이나 품으며  더께 붙는 생각 따위 훌훌 털어버리며  우뚝 선 나무나 될까, 어른대는 저 사내  도수를 고쳐 잡고 흐린 앞날을 살핀다  몸 붙일 터를 찾아 저물도록 표류하는  다비치, 다 비치는 속을 헐은 깃에 숨기고  설움도 마른 시선에 인공눈물 뿌리는 비  닦아낸 거리 어디쯤 새로운 길이 보일지&  [김민정 박사님 - 20.05.22 11:09:45]

  • [이규섭 시인님] “선불카드로 호텔 이용 안 돼요”

      “백화점과 대형마트 이용은 안 됩니다” 주민센터 직원이 서울시 재난 긴급생활비 선불(기프트) 카드를 지급하며 안내한다. 2인 가족 기준 30만 원이 충전된 카드다. 안내장을 챙겨 버스에 탄 뒤 자리를 잡고 살펴봤다. 카드 이용 방법과 사용 가능 기간, 잔액조회 방법 등을 친절하게 기록해 놓았다. ‘서울시 지정 이용 제한 업종’ 목록을 보니 쓴웃음이 절로 나온다. 31개 업종 가운데 첫 번째가 특급호텔이다. 룸살롱, 나이트클럽, 카바레 등 유흥업소와 항공사, 고속버스, 철도 사용도 안 된다. 백화점과 대형마트도 마찬가지다  [ 이규섭 시인님 - 20.05.21 11:03:26]

  • [권영상 작가님] 우체통 안의 봄꿈

      뜰 안에 나무가 여럿 있다. 그런 까닭에 새들 왕래가 잦다. 주로 박새 아니면 곤줄박이다. 마을을 지나가는 김에 잠깐 들러 노래 한번 불러보고, 그러다 별일 없으면 떠나곤 한다. 아무 연고도 없는 우리 집을 찾아와 저만치 오는 봄을 알려주기도 하고, 집안의 고적감을 깨뜨려주거나 집을 비우면 빈 집을 보아주기도 한다. 그런 일들이란 실은 얼마나 자연스러운 건지 그들이 오고 가는 것을 모를 정도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우체통을 세운 나무 기둥이 흔들거려 돌조각으로 여기저기 틈을 찾아 박아주고 일어설 때다. 저  [ 권영상 작가님 - 20.05.20 10:56:06]

  • [한희철 목사님] 은혜를 갚는다는 것

      ‘앙갚음’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자기에게 해를 입힌 사람에게 보복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지요. 내가 받은 괴로움보다 더 크게, 더 고통스럽게 갚으려는 마음이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앙갚음과 비슷한 말 중에 ‘안갚음’이 있습니다. 혹시 글자만 보고는 복수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나 생각할지 몰라도, 그렇지가 않습니다. ‘안갚음’이라는 말은 ‘마음을 다해 키워 주신 부모의 은혜, 받기만 했던 부모의 은혜에 보답한다.’는 뜻입니다. 그런 점에서 안갚음은 ‘반포보은’(反哺報恩)과 같  [ 한희철 목사님 - 20.05.19 10:31:39]

  • [김재은 대표님] 긍정은 끝내 배신하기도 하는가

      이른 아침 비 내리는 미타사에 들렸다. 우거져가는 신록과 초파일 오색 연등이 눈이 시리도록 눈부시게 잘 어울렸다. 이런 시절을 그대로 느끼며 살아갈 수 있는 내 삶이 얼마나 고맙던지 눈물 한 방울이 내리는 비와 섞였다. 그것도 잠시, 마음은 현실로 가속도를 붙여 돌아온다. 길어져가는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다 보니 삶의 적나라한 모습이 눈에 밟힌다. 이전 같으면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던 것들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삶을 파고든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캐내고 오히려 주인 행세하는 격이다. 어떻게든 직접 뛰어야 먹고 살아갈 수  [김재은 대표님 - 20.05.18 10:25:56]

  • [강판권 교수님] 바람에 떨어진 느티나무 가지를 줍다

      바람은 생명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은행나무와 소나무 등 바람을 통해 수정하는 나무들은 바람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천연기념물 제290호 충북 괴산군 삼송리 왕소나무가 2012년 볼라벤 태풍으로, 천연기념물 제541호 경남 합천군 해인사 학사대 전나무가 2019년 강풍으로 쓰러져 천연기념물로서의 가치를 잃어버렸다.   길을 걷다 보면 바람을 이기지 못한 나뭇가지가 떨어진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느 날, 근무하는 곳 길에서 바람에 떨어진 느티나무 가지를 주워서 연구실로 가져왔다. 책상 위  [ 강판권 교수님 - 20.05.15 11:05:24]